김웅(2005-07-04 10:06:24, Hit : 5105, Vote : 884
 2005 작품에 대한 화문(畵文)...

2005. 화문(畵文)  

*************Gallery에 올려져 있는 2005년도  작품에 대한 그림자 글입니다**********

1.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마라, 슬픔의 도착지는 아직 멀었다
코가 뭉개지도록 달리고 달려, 온 몸에 푸른 안개가 돋치도록
아래 입술을 발끈 깨물고 뛰어 올라라, 터지는 울음 삼키고

언제고 그윽한 슬픔의 발원지에 돌아갈 날에는
와락 토해낼 것이다, 그 때는, 오래도록 멈춰 서서 바닥을 치며
참, 시원스레 잘, 잘, 잘거리며 잘도 울어댈 것이다.



2.
그 때, 몇 몇 기억들이 시간의 자궁 안으로 꾸역꾸역
기어 들어왔습니다. 수세기를 거쳐 웅크리고 있을
환한 어둠 속에서는 숨소리마저 날개가 달립니다.
기억들은, 한참을 파닥거리다가 푸릉푸릉 날아오릅니다.
그제서야 가라앉은 기억의 멍든 조각들은
줄지어 연하게 피어오를 것입니다.



3.
보세요, 라,
아픔의 습생에 관해 두릅을 꿰듯 주저리주저리
읊어주고 싶습니다만,  
좀 더 아파해 본 다음에 말하고 싶습니다.
디기탈리스,
그 나직하고 길쭉한 꽃잎에 입맞춥니다, 계곡마다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꽃들이 지천입니다.
디기탈리스,
그 조용한 꽃잎 안에서 얼마간 잠들며
좀 더 아파하겠습니다.



4.    
개다리소반, 물 좋은 미역 냄새나는 저녁시간,
넉넉한 눈길 하나로 배가 부르던 어린 날.
아직 젊은 어머니가 집어 주던 톳나물무침이
입안에서 파릇하게 번져 오르고,
고단한 일상으로 단내 나는 날이면
비틀대는 걸음으로 떼지어 들어와 눈을 감는다
아직 귀밑머리 검던 어머니 무릎 안.          

    
  

5.
그 철갑상어의 이름은, 티뷰론이었다.
바다는, 끝간데 없이 펼쳐진 자락을
함부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바람은,
변덕 심한 애인처럼 바다를 안고 있다가
황급히 내팽개치곤 하였다. 크흘크흘 몸을 뒤채며
밤 내내 바다가 울고 있었을 때,
노인은 뼈만 남은 앙상한 다리로, 다시 흙을 밟게 될 것이다.
커다란 물고기 티뷰론의 뼈만 안고.        




6.
라,
결국, 우리는 가게 될 것입니다.
발목 잡던 물살들은 어느 순간이 되면
아무 이유 없이 잔 등을 후려치기도 합니다.
아득하지만, 너무도 선명한 그 곳.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고개를 내젓는
어느 작은 이를 만났습니다. 진실은 때로
가혹한 것이어서 설명이 어렵기도 합니다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습니다. 아직 어린 작은 이,
그가 경계를 넘어설 때
말없이 안아주려고 합니다. 라,
결국 우리는, 가게 될 것입니다.  



7.
그 부케는, 멘델스존의 한 여름 밤의 꿈속에서
한들거렸다. 제비꽃과 안개꽃이 알맞게 섞인 부케는
얼마간의 눈물과 깊은 감사로 부풀어오르고,
부케 안 속을 종종 헤집고 들어가
행복의 점액질을 야금야금 먹을 숱한 나날들 동안,
부케는 무사할 것이다 행복은, 먹을 수록 수두룩 돋아날 것이므로.



8.
시간의 물레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꽃에도 두 귀와 하나의 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꽃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물레는 돌아가지 않는다. 꽃은 다른 말로
용암이라 불릴 수도 있다.


  
9.
달무리가 집니다.
달무리 속, 얌전한 달이 참았던 눈물을 터트립니다.
달 비가 내리고,
달 비가 포르르 포르르 포르르 내리고
달 속으로 뛰쳐 오르는,
달 비에 젖은 몇몇 이들을 만납니다.  
  



10.
그 협곡, 숨죽인 채 돋아나 있는 암석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고단한 몸놀림,
스치고 부대낄 수록 타닥타닥 튀어 오르는
삶의 파편들.



11.
봄빛, 그리움 속으로 고개를 쳐 박습니다
얼마나 무수히 얼굴을 들이밀어야
또 하나의 얼굴 위로 포개질 수 있는지요
봄빛, 그 고혹 안으로 파고드는 중입니다.



12.
유로굴라,
광활한 태풍의 귓바퀴 안.
마하 수 마일의 속도로 움직이는 환상을 따라
돌고 있는 의식의 몸뚱아리들.



13.
정점으로 향하는, 몇몇 몸부림을 지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침묵하다가
내처 달리기, 빛의 방향으로 돌진하기
위로, 위로 치닫기,
그러다 가만히 숨 돌리기




14.
사라방드를 추는 무희들
자유의 춤은 풀이 눕는 것처럼,
풀이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풀이 풀끼리 얼싸 안는 것처럼.
칸타빌레로 사뿐, 사뿐히.




15.
실낱같은 끈을 놓지 않았다. 가방 속에는
항상 음모가 수런거리고 있었지만,
끈을 놓기에는 아연한 한 낮,  
장중한 선율의 빛과 같이 합창하는 물살들.
얼마간 절망은 꼬들꼬들 마르며 소독되고 있었다.



16.
파란 희열.
하늘이고, 하늘인 채, 하늘 속에서
파랗게 돋아나는 환희.
이글 자글 끓어오르는 불꽃, 불꽃 안에서만
잉태되고 자라나고 불쑥 솟아 나올
영혼의 파란 날개.  

  

17.
눈동자에 빗금 그으며 내리는  
무성한 여름 초록 비.
그리운 것들은 죄다 주룩주룩 거린다.
아무 말 없이, 손짓하는 여름비를 따라 나서는 참.




18.
그리움이 무성합니다.
맑은 햇발이 차고 눅눅한 쓰라림을
꼬들꼬들 잘 말리고 있습니다.
풀벌레들은
보고프다보고프다보고프다
하며 종일 울어 쌌습니다.
짙은 녹음 속으로 들어가 잠시
미친 듯 그리워하겠습니다.  



19.
그 물보라 이는 곳, 바위 위에
걸터앉은 사연들, 파란 눈물들,
곤두박질 쳐대는 물빛 노래들.
후줄근하게 젖어 버리는
추억이라 이름하는 몸쓸 푸른 것들.




20.
후조,
그리움 이 편에서 그리움 저 편까지
헤엄치듯 날아가는 새, 후조.
그 팔랑거리는 초록 자취마다
맑은 하늘이 따라 붙고.
그리움의 길이 따라 하루에도  
수 만리를 날아가는 새,

그런 후조를 닮은,
바다, 푸른 목덜미.




21.
작열하는 바다의 숨소리를 듣는다.
파릇파릇 파시시...파앗파앗파르르...
끊임없이 해일이 일고,
썰려갔다가 울컥 밀려오는 파도
먼 곳으로 흘러가 본 적이 있는 바다는,  
그리움의 조각들을 내뱉을 줄 안다.


22.
이팝나무,  
우리가 서로의 오래된 길을
아무 말 없이 부둥켜안았을 때
그, 몽글거리고 따뜻한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습니다.


가난한 검은 솥이 억울하게 매달린
벽면마다 거미줄이 쳐져있던
바짝 말라 가련한 부엌,
어둠 속에서 하얀 쌀밥 같은, 환한
이팝나무 꽃이 솥 안으로 쏟아졌습니다.


서로의 오래된 길을, 우리가
아무 말 없이 와락 껴안았을 그 때,
걸어나갈 길마다 눈부신,
꽃등 서린 꽃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23.
삶은 잠이며, 사랑은 그 꿈이다
---------알베르토 뮈쎄.

그리하여, 몽글대는 것들을 향해
고개 쳐 박기.
욕망의 용두질은 힘겹다, 힘겨운 만큼 슬프다.
슬픔은 또 다른 힘이다. 그것을 알아내는 이들은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법이다.  




24.
나는, 추락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견고한 레일 위로 기관차가 관통하듯
사정없이 삶이 할퀴듯 지나쳐 버려도,
그 서슬에 잔 돌멩이들이
튕겨져 나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추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금니로 아랫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습니다.




25.
외다리로 살아가는 제게 살풋 다가온
기적 같은 그대는 제게 말했었지요.
그리워할 수록
번민들이 도꼬마리처럼 달라붙는다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저는, 그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움의 대응점은
외로움이라는 것을 말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늘 저 편 위로 깔리는
신기루를 동경하다가
신기루인 줄 모르고 까무룩
거친 잠이 드는 것과 닮았다는 것을
차마 말할 수 없었습니다.


26.
자정을 얼마 남기지 않은 늦은 밤, 버스 안은 한적했습니다만
졸음에 겨운 바람이 포도 씨를 뱉아내듯 후둑후둑
비를 흩뿌려대고 있었습니다
삶의 행적처럼 무거운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창밖을 보는 더운 눈동자
안으로, 함부로 빗방울들이 다닥다닥 달라붙곤 했습니다
물끼리 만나서 물이 되어 타고 내리는 물들이
참 고민도 없어 보여
문득 고향 바다, 두고 온 이들 생각에 시큰한 눈시울 위로
파아란, 파아란 물이 배여 들고 있었습니다


27.
화사한 비명을 지르는 꽃들.
불꽃같은,
더 없이 작열하는 꽃잎들, 새하얀 꽃술까지
그대로 생의 의미가 되는
그 꽃 안으로 뛰어 들 수가 없다.
가까이에 두고서도
다가갈 수 없는
참담한 우여곡절들이란.





28.
몽글대는 것들은 저마다 노래를 간직하고 있다
질끈 감은 눈 위에 덮쳐오는 높새바람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가슴을 휘휘 젓곤 했다.
그해 봄, 벚꽃은 눈동자 위에서 꽃잎을 열고
하얀 꽃비가 되어 내리곤 했다.
갈아 놓은 지 오래 된 사과즙 색깔로 대롱거리던
나무 끝물을 보며 언젠가 우리는
같은 눈동자를 지니게 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몽글대는 것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기다랗고 오래 된 더듬이 같은 게 있다.



Whatever grows and ripens bears fruits of songs;
a high wind  blowing over tight closed eyes
plays the lira of my heart with its long skillful fingers.
cherry-blossoms used to wink at springs
showering their transparent petals on lovers' eyes.
Now, in fall, precipitously perched leaves on tips of twigs-
they remember, in reverie, having expected to face this fate in the end
or, someday, to have assimilated outlook on things.

Whatever has inner maturity keeps certain feelers
long and old, hidden somewhere deep.



29.
이 편과 저 편의 경계를 넘어서는 동안
아늑한 무거움이 몸에 배여 흔들리는 낡은
괘종시계 느긋한 추가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 동안,
막다른 골목 뒤 담장 저 켠 아래
돋을새김으로 피어있는 패랭이 꽃,
조등(弔燈)은 고단한 퍼런 눈동자를 하늘에다 걸어 놓고.


Crossing over the bound of here and yonder
soaked with cozy weight, the pendulum of an alarm-clock
shaking in familiarity left and right -
a pink in conspicuous posture unveils herself
under the age-old wall of a winding blind alley
like mourning lantern, its pale weary eyes
hanging high up in the sky




30.
청정한 늪이 있습니다. 발끝만 담겨져도 와락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 할 늪은,
무성한 소문들로 시끄러웠습니다마는
늪 안쪽에 기적 같이 자라나기 시작한
물푸레나무, 힘찬 호흡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나무가 자란 뒤로 늪은 때때로 보내준다는 것이
영영 가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31.
그 발광체 안에서 벌어지는 향응에 관해서라면
비밀이다. 시간의 토사물들이 눈물이 되어 뿌려지고,
눈물을 주워 먹은 몇몇은 먼 길을 떠나곤 했지만
단 한 번도 길을 원망하지 않았다. 향응은 은밀하지만
가슴을 여미게 했다. 그리하여 빛은 제 갈 길을
조분조분 비춰주고 있었다.



32.
새파란 잎사귀로 엮은 책을 펼치고 있는 물, 물기둥들,
까맣고 맨질한 등을 드러내 놓고 멱을 감던
조약돌 같던 시절, 자맥질 해대며 키득대던 올망졸망한
코흘리개 녀석들이 어룽어룽 녹아있는 물, 물기둥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무지개 자락 같이
하늘하늘 대던 기억들.
책 안의 물, 물 안의 책.



33.
절절한 푸른 향기 그윽한
그, 청명한 곳에서 머물렀던 순간들 만큼
고개를 파묻은 아득함들,

솟구치던 희열들과
손에 잡히지 않는 꿈들은
시린 기억 속에서 가멸진 눈을 감고
몽글대는 것들은 죄다 강을 건너는 물 소리를 내고 있다.



34.
소리 없는 핏빛 절규에 관해서라면
더 이상 들을 수 없습니다. 그대,
파열되고 마는 내질음이여.

목울대에 송글송글 맺히다 결국에는
터져 나오는 피울음들이여.

작열하는 태양 빛에
온 가슴이 말라 붙어 타 죽은 지렁이의
끈적한 마지막 몸부림 같은
노래를 부르는 그대여.

그대, 타닥타닥 타오르는 눈물을 더 이상
더 이상, 쳐다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얼굴 없는 절망의 파열음들을
부디 멈춰 주시길. 그대여.




2003-S.
파헬벨 - 카논 D장조.

사랑은 사치스러운 것이라며
빈 호주머니를 쥔 채
몇 정류장쯤은 다리 저리도록 걷기도 했지만,
언제고 신비로운 감정이 불 일듯 일어난다면,
파헬벨의 카논처럼 화라락,
분명 그럴 것이라고.


--------- 05. 10. 31. -----------









작업실 유희...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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